LOGIN  JOIN MEMBER    HOME    KOR    ENG   
  

KBA-TV

 
  • Top News
  • Picture News
  • Text News
  • PHOTO

 
 
불기 2563년 기해년(2019) 하안거 해제법어
 
 
   글쓴이 : 관리자
작성일 : 08-16-2019 16:10   조회 : 90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佛祖場中不展戈<불조장중부전과>어늘
後人剛地起詨訛<후인강지기효와>라.
道泰不傳天子令<도태부전천자령>이요
時淸休唱太平歌<시청휴창태평가>로다.

부처님과 조사가 계시는 곳에는 다툼이 없거늘
뒷 사람들이 공연히 옳고 그름을 논함이로다.
진리의 도가 넓어지면 천자의 영을 전할 것도 없음이요,
세상이 맑은 시절에는 태평가를 부를 필요조차 없음이로다.

금일은 어느 듯 석 달의 안거(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이라. 세월의 흐름이란 주야(晝夜)가 따로 없고 춘하추동의 계절(季節)에 관계없이 쉼 없이 흐르고 있음이라. 생사(生死)도 이와 같이 신속(迅速)하니 안거가 끝났다고 해서 화두(話頭)없이 행각(行脚)에 나서거나, 각 수행처소에서 나태(懶怠)하거나 방일(放逸)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

부처님의 진리(眞理)를 배우는 제자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 더운 것과 추운 것 등 주변 환경에 구애(拘礙)받지 말고 오직 부처님의 은혜(恩惠)와 시주(施主)의 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 이로부터 신심(信心)과 발심(發心)이 생겨나고 여일(如一)한 정진을 할 수 있음이라.

이 공부는 요행(僥倖)으로 우연히 의심이 돈발(頓發)하고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간다고 저절로 신심과 발심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조석(朝夕)으로 부처님 전에 발원(發願)하면서 자신의 공부상태를 돌이켜보고 점검하여야 퇴굴(退屈)하지 않는 용맹심을 갖게 될 것이니 명심(銘心)하고 명심하여야 할 것이라.

수좌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기만 할 뿐이지, 알려주면 따르지 않는 이가 대다수(大多數)이다. 편하고 쉽게 정진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높은 산을 오르고자 하면서 몸은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것’과 같음이라.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정진하고도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되지 않고 득력(得力)을 하지 못하는지 각자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

화두(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이 화두를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하여 시냇물이 흐르듯이 끊어짐이 없도록 애를 쓰고 애를 써야 할 것이라.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 계셨다. 조주선사께서는 10세미만의 나이로 출가하여 남전 선사께 인사를 올리니, 남전선사께서는 누워 계시던 채로 인사를 받으며 물으셨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을진대,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시는 부처님은 뵈었습니다."
남전 선사께서 누워 계시니 하는 말이다. 남전 선사께서 이 말에 놀라, 그제서야 일어나 앉으시며 다시 물으셨다.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沙彌)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너의 주인이 누구인고?"
"스님, 정월이 대단히 추우니 스님께서는 귀하신 법체(法體) 유의하시옵소서."
그대로 아이 도인이 한 분 오신 것이다. 남전 선사께서 기특하게 여겨, 원주를 불러 이르셨다.
"이 아이를 깨끗한 방에 잘 모셔라."

부처님의 이 견성법(見性法)은 한 번 확철히 깨달을 것 같으면, 몸을 바꾸어 와도 결코 매(昧)하지 않고, 항상 밝아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이다. 이 사미승이 바로 조주(趙州) 스님인데, 이렇듯 도(道)를 깨달은 바 없이 10세 미만인데도 다 알았던 것이다. 조주 스님은 여기에서 남전(南泉) 선사의 제자가 되어 다년간 모시면서 부처님의 진안목(眞眼目)을 갖추어 남전 선사의 법(法)을 이었다.

조주 선사 회상(會上)에서, 한 수좌(首座)가 석 달 동안 공부를 잘 해오다가 해제일(解制日)에 이르러 하직인사를 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이르셨다. "부처 있는 곳에서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에서도 급히 달아나라. 만약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그릇 들어 말하지 말라." 이에 그 수좌가, "스님,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摘楊花摘楊花]"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하는데 어째서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고 하는가? 이러한 법문은 알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만일 누구라도 각고정진(刻苦精進)하여 이 법문의 뜻을 알아낸다면,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묘의(無量妙意)를 한꺼번에 다 알아서 하늘과 땅에 홀로 걸음하리라.

조주 선사의 "摘楊花摘楊花(적양화적양화)"를 알겠는가? 千里烏騅追不得(천리오추추부득)이라. 천 리를 달리는 오추마라도 따라잡기 어렵느니라. 약 100여년 전 우리나라에 만공(滿空)선사라는 도인스님이 계셨는데, 수십 명 대중에게 항시 바른 수행을 지도하고 계셨음이라. 하루는 몇몇 수좌들과 마루에 앉아 한담(閑談)을 하고 있는 차제(此際)에 처마 끝에 새가 푸우울 날아가니 만공선사께서 물으셨다.

“저 새가 하루에 몇 리나 날아가는고?”
이 물음에 다른 수좌들은 답이 없었는데 보월(寶月)선사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명답을 했다.
“촌보(寸步)도 처마를 여의지 아니했습니다.”

훗날 만공선사께서 열반에 드시니 산중회의에서 고봉(高峯)선사를 진리의 지도자인 조실(祖室)로 모시기로 하였다. 어느 결제일이 도래하여 대중이 고봉선사께 법문을 청하니, 고봉선사가 법문을 위해 일어나서 법상에 오르려 하였다. 바로 그때 금오(金烏)선사가 뒤를 따라가서 고봉선사의 장삼자락을 잡으면서 말했다.
“선사님,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장삼자락 놔라!”
고봉선사가 이렇게 말하니, 금오선사가 재차 물었다.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장삼자락 놔라!”
그 후로 40년 세월이 흘러 하루는 산승의 스승이신 향곡선사께서 산승에게 이 대문을 들어서 물으셨다.
“네가 만약 당시에 고봉선사였다면 금오선사가 장삼자락을 붙잡고 한 마디 이르고 오르라 할 때에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고?”
향곡선사의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산승은 벽력같이 ‘할(喝)’을 했다. “억!” 하고 할을 하니, 향곡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그렇게 할을 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을 다 멀게 하여가리라.” 할이 틀렸다는 말이다. 향곡선사의 이 같은 말씀에 산승이 바로 말씀 드렸다.
“소승(小僧)의 허물입니다.”
그러자 향곡선사께서 멋지게 회향하셨다.
“노승(老僧)의 허물이니라.”

자고(自古)로 법담(法談)은 이렇게 나가야 된다. 장삼자락을 붙잡고 ‘이르라’ 할 때에는 한 마디 척 해야 되는데, 산승이 즉시 ‘할’을 한 것은 묻는 상대의 안목(眼目)을 한 번 흔들어 놓는 것이다. 즉 묻는 사람이 알고 묻느냐 알지 못하고 묻느냐, 상대의 안목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 향곡선사께서는 바로 낙처(落處)를 아시고는 ‘네가 만약 그렇게 후학을 지도한다면 앞으로 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간다’고 바르게 점검하신 것이다. 이렇게 흑백을 척척 가릴 수 있어야 선지식이 되고 만 사람의 바른 지도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눈이 없다면 태산(太山)이 가리고 있어서 선지식 노릇을 할 수 없는 법이다.

향곡선사의 말씀에 산승이 ‘소승의 허물입니다.’ 하고 바로 잘못을 거두니, 향곡선사께서도 ‘노승의 허물이니라.’ 하고 바로 거두셨으니, 이 얼마나 멋지게 주고받은 진리의 문답인가! 이처럼 남방의 불법과 북방의 불법의 심천(深淺)이 크게 있는 것이라.

시회대중(時會大衆)이여!
이 대문(大文)을 바로 보시오!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대종사]

上堂하야 打柱杖 三下云
상당 타주장 삼하운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치고 이르시되

一條柱杖擊須彌 하니 霹靂聲中露全機 로다
일조주장격수미 벽력성중로전기
誰言難破漆桶關 가 般若利釼卽能破 로다
수언난파칠통관 반야이인즉능파

한자루의 주장자로 수미산을 격파하니 벽력의 소리 가운데 전기가 드러났도다
누가 칠통관을 파하기 어렵다고 말하던가? 반야의 날카로운 칼로 곧 능히 파하도다.

時會大衆은 諦聽하라
시회대중 제청
圓覺妙旨는 無始廣劫에 本自不失이어니 云何更尋 이리요
원각묘지 무시광겁 본자부실 운하경심
亘古至今히 廓然寂照하니 大衆은 委悉麽아
긍고지금 확연적조 대중 위실마
碧眼衲僧은 且道一句來하라!
벽안납승 차도일구래

良久에 “一喝” 云 石虎生獅子 하고 木人이 歌詠舞 하야사 始得다
양구 “일할” 운 석호생사자 목인 가영무 시득

시회대중은 자세히 들어라!
원각묘지는 비롯함이 없는 광겁에 본래 스스로 잃지 않았으니 어찌 다시 찾으리요!
옛적부터 지금까지 확연히 고요히 비추니 대중은 알겠는가?눈푸른 납승은 한마디 일러보라!

잠깐 있다가 “할”을 한번 하고 이르시되
돌호랑이가 사자새끼를 낳고 나무사람이 노래를 부르고춤을 추어야 비로소 옳다.

一切衆生이 六塵所覆와 五陰所使로 頻經生死往來나
일체중생 육진소부 오음소사 빈경생사왕래
其性은 不昧하야 不離暫時니 各起吹毛利 하야
기성 불매 불리잠시 각기취모리
會得本性時에 即爲大自由人 하리라
회득본성시 즉위대자유인

일체중생이 육진에 덮인 바와 오음의 부린 바로 자주 생사에 왕래함을 겪으나
그 성품은 매하지 아니해서 잠시도 여의지 아니했으니 각자 취모리를 일으켜서
본성을 알아 얻었을 때 곧 대자유인이 되리라.

頌曰
송왈
게송으로 이르시되

衆生明性是名佛이요 迷性徃還名衆生 이니라
중생명성시명불 미성왕환명중생
心性圓明自由人 이 此時眞正解制人 이로다
심성원명자유인 차시진정해제인

중생이 성품을 밝히면 이름이 부처님이요성품을 미하여 왕환하면 이름이 중생이니라
심성을 뚜렷이 밝힌 자유인이 이것이 진정 해제인 이로다.

諸緣에 無所着 하라! 하고 遂下座 하시다
제연 무소착 수하좌

모든 반연에 집착한바가 없이하라! 하시고 드디어 하좌하시다.

[영축총림 총도사 방장 성파대종]

-걸음마다 연꽃, 머무는 곳마다 청정도량-

法相非法相이여
開拳復成掌이로다
浮雲散碧空하니
萬里天一樣이로다

법상과 비법상이여!
주먹을 펴니 다시 손바닥이로다
뜬구름이 푸른 하늘에서 흩어지니
만리 하늘이 한 모습이로다.

부처님 법대로 안거를 성만한 총림의 청정대중이여! 그 당당한 모습 모든 불보살님이 찬탄합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무량한 아라한보다 여법하게 수행하는 청정승가가 수승하다 하셨습니다.
안거를 성만한 대중은 지혜와 정진력이 원만해진 까닭에 법랍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걷는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머무는 곳마다 청정도량이 이루어지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은 감동과 존경 속에 불법과 함께하기를 발원하고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됩니다.

참선수행자는 지혜로운 삶을 근본으로 바라밀을 실천하는 이 시대의 원력보살입니다.
무주상보시를 통해 무아를 체득하고 본래 구족한 지혜덕상을 활용하며, 삼취정계의 실천을 통해 부처님이 실천해 보이신 여법한 수행자의 모습과 복된 삶의 모범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참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인연을 통해 바라밀을 완성하며, 쉼 없는 정진을 통해 이루어지는 희망찬 모습과 안정된 마음에서 이루어 내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스스로 체득하고 이 땅에 실현하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입니다. 반야지혜를 성취한 수행자의 안목으로 실천하는 바라밀은 청정한 법계와 함께하게 합니다.

무더위를 서늘하게 식혀가며 정진해 온 총림대중이여! 이제 산문을 나서는 수행납자의 걸음걸음은 중생의 행복을 위해 회향되어야 하고, 맞이하는 모든 인연은 각자의 수행력을 점검하는 좋은 인연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걸음과 위의와 안목은 이 땅이 불국토가 되게 하는 최상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得樹攀枝未足奇라
懸崖撤手丈夫兒니라
水寒夜冷魚難覓하니
留得空船載月歸로다

벼랑에서 나뭇가지 잡는 것은 기특한 일이 아니니
손을 놓을 수 있어야 비로소 장부라네
물이 차고 밤기운 싸늘하여 고기 물지 않으니
빈 배에 달빛 싣고 돌아오도다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대종사]

- 머리는 재로 덮이고 얼굴은 흙이 묻었느니라.-

하늘과 땅이 갑자기 툭 터지고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일시에 환해지며, 설령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방(捧)’을 휘두르고 천둥번개 소리처럼 벽력같은 ‘할(喝)’을 질러댄다고 해도 끝임 없이 향상(向上)하는 공부인(工夫人)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끊임없는 향상이란 결제와 해제를 구별하지 않는 정진력이요 세간과 출세간을 나누지 않는 수행력 입니다.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 회운(懷惲)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해제 이후의 일입니까?”
“회두토면(灰頭土面)이니라. 머리는 재로 덮이고 얼굴은 흙이 묻었느니라.”
이 말을 듣자마자 동안(同安)선사가 말했습니다.
“털거나 닦아내지 않겠습니다.”

결제를 제대로 마친 향상인(向上人)이라고 한다면 세간이라는 불에 들어가도 절대로 제 몸을 태우지 않을 것이며, 해제라고 하는 물에 들어가더라도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 삼악도의 지옥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여유 있게 유원지에서 노는 것처럼 자유로울 것입니다. 설사 아귀세계나 축생세계에서 과보를 받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괴로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해제와 결제가 하나이며 수행과 만행이 둘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는 유보학 언수(劉寶學 彦修)거사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하나를 마치면 온갖 것을 마치게 되고, 하나를 깨달으면 온갖 것을 깨닫게 되며, 하나를 증득하면 온갖 것을 증득하게 됩니다. 대비심을 일으켜 역순(逆順)의 경계 가운데 타니대수(拖泥帶水), 즉 뻘을 안고서 흙탕물과 합해지더라도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구업(口業)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건져내야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요 이것이 바야흐로 대장부가 할 일입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해제를 하지 않는다면 늘 푸른 산, 맑은 하늘 아래 살 수 있겠지만 해제를 한다면 더러운 재를 바르고 흙이 묻는 일을 마다할 수 없습니다. 푸른 산, 맑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은 곧 만 길 되는 봉우리 위에 홀로 서있는 것이며 머리에 재를 바르고 얼굴에 흙이 묻는 것은 중생경계와 함께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둘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머리에 재를 바르고 얼굴에 흙이 묻은 채로 만 길 봉우리 위에 서있을 때도 있고, 또 어느 때는 만 길 봉우리에 선 것이 곧 머리에 재를 바르고 얼굴에 흙이 묻는 꼴이 되기도 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저자거리에 들어가서 방편을 사용한 것과 높은 봉우리에 고고하게 홀로 서있는 것은 알고 보면 서로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고덕(古德)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회두토면(灰頭土面)이니라. 머리는 재로 덮이고 얼굴은 흙이 묻었느니라.”

노흉선족입전래(露胸跣足入廛來)터니
말토도회소만시(抹土塗灰笑滿腮)라

가슴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시중에 들어오니
흙먼지 묻은 얼굴이지만 웃음이 가득하네.

[고불총림 방장 지선대종사 ]

더위 속에서 정진하던 대중들이 이제 산문 밖으로 나갈 날이 되었습니다. 고요한 선방 속에서 정진을 하다가 이제 온갖 육진경계(六塵境界)가 넘쳐나는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야하는데 마음이 여여(如如)합니까?

대중들께서 반연들을 밀쳐두고 정진하던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나라에도 어려운 일이 많고 사람들도 저마다 괴로울 일이 늘어난 듯 싶습니다. 아무래도 그러한 일들과 사람들을 대하면 마음이 불편할 일도 있을터입니다. 하지만 지난 안거기간 정진했던 그 힘으로 능소능대(能小能大) 잘 대처하길 바랍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대기대용(大機大用)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적게하고 행동은 민첩하며 無心으로 스스로 정진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넣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無心을 이룬 사람은 그대로가 부처인지라 처한 곳마다 참(眞) 아님이 없어 오탁악세의 땅에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같습니다.(淸風匝地)

제가 몇해 전 미얀마의 큰스님들이 상을 받는 것을 보았는데 그 기준이 세상에 불자들을 얼마나 많이 늘렸는지였습니다. 수행정진을 한 힘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친 선승,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펼친 강사스님등 실질적인 성과를 가지고 그 분들의 살림살이를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셨던 자교오종(藉敎悟宗)을 다시 새겨봐야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영명연수 스님 말씀처럼 실답게 깨친 것이 없어 걸음걸음마다 유에 결려있으면서 말끝마다 공도리를 논하며 업력에 끌려들어감을 책하지도 않는(全無實解 步步行有 口口談空 自不責業力所牽) 그런 썩은 수행자가 이 세상에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 이 시절에는 정말 실다운 수행자가 절실합니다.

지난 혹서의 여름을 잘 산 우리 대중들에게 저의 헛된 염려가 중언부언(重言復言) 허물이 됩니다 한산시 한편으로 말끝을 하겠습니다.

男兒大丈夫 作事莫莽滷 출격대장부라면 일을 하되 함부로 하지말라!
勁挺鉄石心 直取菩提路 철석처럼 굳고 곧게 보리의 길을 바로 취하라!
邪路不用行 行之枉辛苦 삿된 길을 가지말지니 가봐야 괴로울 따름이다.
不要求佛果 識取心王主 불과를 구하려고도 하지말며 다만 차별없는 참사람이 되어라.
(無爲眞人)!
咄咄!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71 뉴저지 원적사 후불탱화 점안법회 회향 관리자 10.19.2019 10
70 뉴저지 원적사 개원 17주년 기념법회 관리자 10.11.2019 23
69 불기 2563년 기해년(2019) 하안거 해제법어 관리자 08.16.2019 91
68 기해년 하안거 결제법어 관리자 05.22.2019 126
67 인터넷 지상 중계 <뉴저지 보리사 신축 관음전 개토식> 관리자 04.17.2019 207
66 덕숭총림 신임 방장 우송스님 추대 및 대종사 자격 강화 관리자 03.29.2019 634
65 3월3일 대관음사 뉴욕도량 신중기도 법회 (1) 관리자 03.03.2019 210
64 대관음사 뉴욕도량 설날 조상합동차례 봉행 (1) 관리자 02.06.2019 337
63 불기2563년 기해년 신년사 관리자 12.29.2018 283
62 새해 기해년 복 많이 받으십시오 관리자 12.16.2018 266
Total 71
 
 
 
 1  2  3  4  5  6  7  8  LAST